출처
김규항의 블로그
http://www.gyuhang.net



고래가 그랬어 38호 Q&A

저는 강남에 살아요. 우리 반엔 잘사는 집 친구가 많아요. 우리 반에서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한 것 같아요. 저랑 친한 친구들도 우리 집보다 훨씬 큰 아파트에 살고 용돈도 저보다 훨씬 많이 받아요. 친구들과 노래방 가거나 뭐 사먹을 때는 돈이 없어서 창피할 때가 많아요. 친구가 사주거나 대신 내주기도 하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만날 얻어먹을 순 없잖아요. 아빠는 "자기가 가진 걸 나누는 게 진짜 친구"라며 친구가 사주는 걸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하세요. 그래도 저는 창피해요. 친구들이 만나서 놀자고 전화해도 거짓말로 피하는 경우도 있어요.
김준성(6학년, 남자)



준성이 이야기 듣다보니 삼촌 어릴 적 생각이 나네. 삼촌집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거든.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본 게 6학년 때였어. 그걸 누가 사줘서 집에 가져왔는데 누런 물과 나무막대기만 들었더라. 더운 날씨에 그걸 들고 한참을 걸어왔으니 다 녹아버린 거지. 그런데 아이스크림은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어. 그걸 후루룩 후루룩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셨지.^ ^
준성이네 집이 가난하다는 건 준성이가 가난한 게 아니라 부모님이 가난한 거겠지? 그래서 준성이 용돈이 동무들보다 적고 말이야. 그 동무들의 용돈도 다 그 동무들 부모님이 주시는 거지? 그러니 준성이가 창피할 건 없는데 말이야. 아빠 말씀대로 동무끼린 뭐든 서로 나누며 지내는 게 당연하고. 돈이든 다른 것이든.
그런데 그 동무들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 준성이 부모님보다 더 부자가 되었을까? 정직하게 열심히 일한 결과겠지? 삼촌도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지도 몰라. 요즘 우리 사회에는 정직하게 일하지 않고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참 많거든. 이를테면 5년 전에 5억원쯤 하던 강남의 아파트가 지금은 20억원이나 한다나봐. 그걸 가진 사람들은 가만 앉아서 15억원을 번거지. 15억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 준성이 부모님이 5년 동안 함께 열심히 일해서 아끼고 아껴서 얼마나 저축할 수 있을까? 한 달에 100만원을 저축한다고 해봐. 물론 그게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쳐봐. 5년이면 얼마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는 거라면 부자가 자랑스러운 거 맞아. 게을러서 가난한 거라면 가난은 창피한 거 맞아. 하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도 가난하다면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화가 나는 일이지. 그건 우리가 사는 사회가 바르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는 힘을 모아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르게 고쳐나가야 하겠지?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런데 지금 현재의 가난을 무작정 창피해한다면 아무 것도 고칠 수 없을 거야. 부자는 무조건 자랑스러운 거라면 아무 것도 고칠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준성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뭘 사먹고 하는 건 좀 시시한 놀이 아닌가? 하긴 요즘은 어른들도 돈을 쓰며 놀아야만 제대로 노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해. 삼촌이 보기엔 그런 놀이들은 다 시시한 놀인인데 말이야. 우리는 진짜 신나게 노는 방법을 잊고 지내는 것 같아.
준성아. 엄마 아빠가 어떻게 사시는지 잘 살펴봐. 준성이가 가난한 걸 창피해한다면 그건 엄마 아빠를 창피해하는 거잖아. 엄마 아빠가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며 사신다면 준성이는 엄마 아빠를 창피해할 게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할 거야.
삼촌 말이 맞는 것 같아? 말은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마음이 개운치는 않지? 솔직히 말하면 삼촌도 때론 그렇단다. 산다는 건 생각처럼 간단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맞는 건 맞다고 믿고 또 그걸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는 건 멋진 일 맞지? 준성아, 함께 힘내자. 준성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수많은 동무들과, 그리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면서도 가난한 수많은 엄마 아빠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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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30 2007/01/10 14: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많이 난다.

    • hanos 2007/01/11 08:34  address  modify / delete

      건강에 해로우니 넘 화내지 마시오.
      그나저나 강북에 사는 난, 벌써 자녀에게 미안한걸-_-;;

      이 땅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가진 남는 집과 건물을 합당한 가격에 내려놓으면
      부동산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될 거라는 생각을 해 봤다.

  2. E 2007/01/10 21: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당연한 말을 하면서도 이렇게 파워가 있는 것은, 김규항씨가 실제 저렇게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역시 좋은 어른,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hanos 2007/01/11 08:36  address  modify / delete

      저런 생각을 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실천까지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행동파 지식인이 되는 것 같네

      본 받아서 잘 살아보도록 합시다.

  3. ㅃ^ 2007/01/10 21: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직하게 열심히 살수록 더 잘 살 수 있는
    비례관계가 성립하는 세상이라면,

    글쎄요-
    거꾸로 잘 사는 척도로 그 사람의 정직성을 판단할 수 있는 아이러니함? 혹은 잘 살기 위해서 정직해지려는?

    무엇보다 일단 부자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부자 = 얼추 좀 뒤가 구린데?' 라는 등식이 대략 성립하는 사회가 부조리를 더 크게하는 형국.

    그러니 '뒤가 구려도 부자만 될수 있다면..'의 사고가 만연해 지는듯.

    아 몰라.
    난 그냥 형한테 종종 소세지 얻어먹는걸로 만족ㅎ :)

    • hanos 2007/01/11 08:40  address  modify / delete

      잘 살기 위해 정직해 지는 건, 순간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좋은 일인 것 같오 ㅎㅎ

      우리나라 워낙 없이 살아서, 부자에 대해 삐딱한 시선이 많았는데
      다행히 요즘 점점 부자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생겨나는 듯

      어쨌든 앞으로 세환이 존경하면서 살면 되는거야?

  4. E 2007/01/23 09: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생각해보니 사연을 보낸 이 녀석도 강남에 아파트 살고 있자나 -_-;; 타워펠리스 맞은 편 레미안 주민들이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꼴- ㅎㅎ

    • hanos 2007/01/29 17:19  address  modify / delete

      순간순간 상대적인게 절대적으로 보이는 일이 많은 듯
      어쨌든 친구들보다 진짜로 가난하긴 가난한거쟎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