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os' Diary #815, 목요일, 엄청더웠지아마
2002년
이 작은 나라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온통 빨갛게 물들어 버린 그 여름이었다.
심장이 뛰는 그 자리에 30년 전 내가 처음 달았던 태극기를 가슴에 붙이고
두리가 나타나던 순간 무릎의 힘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만 세상의 모든 것과 진심으로 화해하고 싶어졌다.
미움으로 가슴을 채우고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의 성을 쌓느라고 참고 인내하던 그 고통의 과정과는 너무도 달랐다.
어디엔가 출구가 있겠지만 나는 그 출구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아들 두리가 내 손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두리를 향한 많은 사람들의 너그러운 미소와 웃음은
내 속의 분노를 감사로 바뀌게 했다.
나는 그때 그들을 향해 너무나 오랜만에 '고맙습니다'를 수없이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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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차두리 선수가 처음으로 월드컵 경기장에 등장하였을 때
갑자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차범근 해설위원이 생각났다.
그가 축구와 조국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을지 나는 짐작도 못하겠다.
그런 그를 시기하고, 폄하하고, 끌어내리기에 급급했던
어리석고 악랄한 그들을 이렇게 포용하고 고마워하다니.
영원히 존경할테다.
2002년
이 작은 나라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온통 빨갛게 물들어 버린 그 여름이었다.
심장이 뛰는 그 자리에 30년 전 내가 처음 달았던 태극기를 가슴에 붙이고
두리가 나타나던 순간 무릎의 힘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만 세상의 모든 것과 진심으로 화해하고 싶어졌다.
미움으로 가슴을 채우고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의 성을 쌓느라고 참고 인내하던 그 고통의 과정과는 너무도 달랐다.
어디엔가 출구가 있겠지만 나는 그 출구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아들 두리가 내 손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두리를 향한 많은 사람들의 너그러운 미소와 웃음은
내 속의 분노를 감사로 바뀌게 했다.
나는 그때 그들을 향해 너무나 오랜만에 '고맙습니다'를 수없이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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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차두리 선수가 처음으로 월드컵 경기장에 등장하였을 때
갑자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차범근 해설위원이 생각났다.
그가 축구와 조국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을지 나는 짐작도 못하겠다.
그런 그를 시기하고, 폄하하고, 끌어내리기에 급급했던
어리석고 악랄한 그들을 이렇게 포용하고 고마워하다니.
영원히 존경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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