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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블로그
http://www.gyuhang.net
Posted by gyuhang at 2006.06.28 02:5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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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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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보다 더 해.” “여자의 적은 결국 여자야.” 여자들이 하는 말이다. 젊은 여성들일수록, 또 여성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일 수록 그런 말을 많이 한다. 그들은 적어도 철저한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시어머니나 중장년 여성들을 두고 말하는 건 아니다. 좀 더 세련된 의식을 가진 듯한, 그래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같은 여성으로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길 기대한, 여성에게서 겪은 뼈아픈 체험을 말한다.
남자인, 그런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내가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여자의 적은 결국 여자”라는 말엔 심각한 혼란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마 몸, 구체적으로 성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뒤집어 이야기해보자.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은 여성인가?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이 ‘생리적 여성’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생리적 여성들이 모두 ‘사회적으로도 여성’인 건 아니다.
우리가 이른바 ‘여성 문제’를 말하고 또 그 적극적인 형태로서 ‘여성주의’라는 사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여성운동을 ‘소수자운동’이라고 한다. 여성은 남성과 생리적 숫자는 비슷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소수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남성화한 여성, 생리적 여성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남성인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말투가 남자 같고 겉모습이 남자 같은 여성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성찰의 능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남성성을 가진 여성 말이다. 아마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 지목되는 여성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을 두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그 여성들은 실은 남성, 생리적 여성이되 사회적 남성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여성에 스며든 남성성, 가부장성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자의 적은 남성성, 가부장성이다. 그 남성성과 가부장성은 일반적으로 생리적 남성에게 존재하지만 종종 생리적 여성에게도 존재한다.’
사회적 차원은 접고 생리적 여성을 무작정 여성이라 볼 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혼란에만 빠지는 건 아니다. 수많은 혼란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매우 보수적인, 말하자면 남성성과 가부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정치인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혼란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몹시 열렬하지만, 애석하게도 ‘여자 성기를 가진 남자’를 지지하는 중이다.
여성해방은 남성들이 누리던 권력과 기득권을 여성들이 빼앗아 누리자는 것일까? 여성해방은 단지 그런 ‘권력의 교환’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남성성과 가부장성이 망가트린 세상을 여성성으로 되살려내는, 폭력과 증오의 세상을 평화와 용서와 성찰의 세상으로 바꿔내는 것이 아닐까?
(싱글즈)
남자인, 그런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내가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여자의 적은 결국 여자”라는 말엔 심각한 혼란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마 몸, 구체적으로 성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뒤집어 이야기해보자.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은 여성인가?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이 ‘생리적 여성’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생리적 여성들이 모두 ‘사회적으로도 여성’인 건 아니다.
우리가 이른바 ‘여성 문제’를 말하고 또 그 적극적인 형태로서 ‘여성주의’라는 사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여성운동을 ‘소수자운동’이라고 한다. 여성은 남성과 생리적 숫자는 비슷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소수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남성화한 여성, 생리적 여성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남성인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말투가 남자 같고 겉모습이 남자 같은 여성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성찰의 능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남성성을 가진 여성 말이다. 아마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 지목되는 여성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을 두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그 여성들은 실은 남성, 생리적 여성이되 사회적 남성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여성에 스며든 남성성, 가부장성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자의 적은 남성성, 가부장성이다. 그 남성성과 가부장성은 일반적으로 생리적 남성에게 존재하지만 종종 생리적 여성에게도 존재한다.’
사회적 차원은 접고 생리적 여성을 무작정 여성이라 볼 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혼란에만 빠지는 건 아니다. 수많은 혼란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매우 보수적인, 말하자면 남성성과 가부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정치인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혼란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몹시 열렬하지만, 애석하게도 ‘여자 성기를 가진 남자’를 지지하는 중이다.
여성해방은 남성들이 누리던 권력과 기득권을 여성들이 빼앗아 누리자는 것일까? 여성해방은 단지 그런 ‘권력의 교환’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남성성과 가부장성이 망가트린 세상을 여성성으로 되살려내는, 폭력과 증오의 세상을 평화와 용서와 성찰의 세상으로 바꿔내는 것이 아닐까?
(싱글즈)
Posted by gyuhang at 2006.06.28 02:5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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