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한기억 추억

from diary 2009/04/20 17:35


Hanos' Diary #1036
20090420, 월요일, 비 많이 오네

 

2001년, '한 두 달만 일하면 곧 병역특례 근무를 시작하게 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한 벤처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신앙심이 각별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여서 아침마다 예배를 드렸고, 인사업무를 담당하시던 과장님께서는 예배를 마칠 때 마다 '재우 형제 사랑해요.' 라며 축복도 해 주셨다. 그런데 곧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병역특례근무가 이상하게 차일피일 1년 가까이나 미뤄졌고, 복학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결국 다른 회사에 지원하여 병역특례 입사통보를 받았다.

"과장님, 저 다른 회사에 출근하게 되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앗 재우 형제 잠깐만 기다려봐욥."

다음날, 과장님께서는 지난 1년 동안 도저히 안 된다던 병역특례근무를 하루 만에 시작하게 해 주셨다. 알고 보니 1년 전부터도 병특 근무가 가능했었는데 그냥 알바로 쓰는 게 회사에 금전적으로 이득이어서 계속 미뤄왔던 것이었다. 차라리 월급을 반납하라고 하지. 하루하루 시간이 갈 때 마다 속태웠던 사정을 뻔히 알았으면서. 이렇게 글로 쓰니 덤덤하지만, 그 기간동안 얼마나 불안해하고 고민했었는지 모른다.

-
그 다음 부턴 어딜 가서도 입에서 쉽사리 "**형제 사랑해요"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바닥까지 무너진 것 같았다. 목사님이 사기친 이야기를 들어도 놀라기 보다는 '사람은 원래 그런 거니까.'라는 생각이 너무 쉽게 들더라.

병특을 마친 지도 벌써 5~6년이 지나 그 때 일은 거의 잊었지만 사람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나쁜 버릇이 남았다. 뭐 보이스 피싱 사기 같은 거 안 당하고 좋긴 한데, 마땅히 신뢰해야 할 주위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합당한 믿음을 잘 전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혹시 내가 너무 딱딱한 사람처럼 보여도 그게 다 어린 시절 아픈 추억이 있어서 그런 거다.) 앞으로 신경 써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